“나이 들어서 그래”로 넘겼던 증상, 대동맥판막협착증이었다면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1. 대동맥판막협착증이란 무엇인가
2.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이유
3. 증상을 알아채기 어려운 이유와 가족이 살펴야 할 신호
4. 심장초음파로 확인하는 협착의 정도
5. 치료 방법과 최근 건강보험 기준 변화
6. 자주 묻는 질문
지난 6월 말, 모내기를 끝낸 논을 살피고 밭일을 하던 70대 후반 남성이 경운기를 몰던 중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큰 병 없이 농사일을 계속해온 터라 본인도 가족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병원 검사에서 상당히 진행된 중증의 대동맥판막협착증이 확인됐습니다.
대동맥판막협착증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심장에는 승모판, 삼첨판, 대동맥판, 폐동맥판 네 개의 판막이 있습니다. 이 중 대동맥판막은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피가 나갈 때 열리는 문 역할을 합니다. 이 문이 제대로 열려야 온몸에 피가 충분히 퍼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 판막이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면 잘 열리지 않게 되고, 피가 빠져나가는 통로가 좁아집니다. 판막에 석회질이 쌓이는 것도 협착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수도꼭지에 비유하곤 합니다. 수도꼭지 입구를 손가락으로 일부 막으면 물이 나오는 길이 좁아져 물살이 세지는 것처럼, 판막이 좁아지면 그 사이로 피가 통과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원리입니다.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이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대동맥판막협착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8년 1만 3787명에서 2024년 4만 7676명으로 늘었습니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처럼 매년 수십만 명 규모로 발생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증가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환자 상당수가 70대 이상에 몰려 있어, 이 연령대 이후로는 “나와는 무관한 병”이라고 넘기기 어려운 질환입니다.
증상을 알아채기 어려운 이유와 가족이 살펴야 할 신호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천천히 진행되는 특성 때문에 환자 스스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걸어가던 거리를 차로 이동하거나,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찾고, 밭일이나 집안일을 하다 중간에 자주 쉬게 되는 식입니다. 이런 변화는 흔히 “나이 들어서 그렇다”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지기 쉽습니다.
이 질환은 중증도와 증상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고령 환자는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 증상을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해서 병도 가볍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심장초음파로 확인하는 협착의 정도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 동네 의원에서 청진 중 심장 잡음이 들리거나 건강검진 중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장 잡음은 원래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들리는 것을 말하는데, 모든 잡음이 위험한 것은 아니며 위험하지 않은 양성 잡음도 존재합니다.
다만 고령 환자에게 심장 잡음이 들리면서 숨참, 흉통, 어지러움, 실신이 함께 나타난다면 심장초음파로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심장초음파는 판막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피가 얼마나 빠르게 통과하는지, 심장이 얼마나 부담을 받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 협착의 정도를 경증, 중등도, 중증으로 구분합니다. 혈류 속도만으로 판단이 애매한 경우에는 CT 등 다른 영상 검사를 함께 활용하기도 합니다.
치료 방법과 최근 건강보험 기준 변화
검사 결과 경증이라면 곧바로 시술이나 수술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콩팥 기능, 흡연 등 위험 요인을 관리하며 6개월에서 1년 간격으로 심장초음파를 통해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중증으로 진행되고 호흡곤란, 흉통, 실신,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어지러움이 반복된다면 본격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좁아진 판막은 약물만으로 다시 넓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가슴을 열고 판막을 교체하는 전통적인 대동맥판막치환술이나 허벅지의 대퇴동맥을 통해 인공판막을 넣는 TAVI(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 중에서 환자의 상태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떤 방법이 적합한지는 나이만으로 정하지 않고 수술 위험도, 혈관 상태, 판막 구조, 동반 질환, 환자의 생활 목표까지 함께 고려해 결정합니다.
최근 TAVI 관련 건강보험 기준도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80세 이상이면서 수술 고위험군 (STS 스코어 8% 이상)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만 시술 본인부담률이 5%로 낮아졌지만, 이제는 심장통합진료팀이 TAVI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급여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됐습니다. 60대, 70대 환자도 본인부담 5%로 TAVI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