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당뇨병이라고 하면 배가 많이 나오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마른 체형이라 하더라도 혈당 수치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당뇨 환자 세 명 중 한 명은 정상 체중 범주에 속하는 마른 당뇨(Normal-weight diabetes)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체중계 숫자에 안심하던 사람들이 정작 정밀 검진에서 당뇨 판정을 받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는 이유입니다.
한국인 당뇨 환자 34.6%가 정상 체중인 이유
한국인 당뇨 환자의 약 34.6%는 체질량지수(BMI)가 25kg/㎡ 미만인 마른 체형이며 이는 서구권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입니다. 아시아인은 유전적으로 췌장의 크기가 작아 인슐린 분비 능력이 태생적으로 낮기 때문에 조금만 내장 지방이 쌓여도 혈당 조절 기능이 쉽게 무너지는 특성을 보입니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2012년부터 2023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비만하지 않은 당뇨 환자들은 진단 당시 혈당 수치가 오히려 비만형 환자보다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겉모습이 마르다 보니 스스로 병을 의심하지 않아 조기 발견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살이 찌지 않았다는 사실이 건강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막상 정밀 검사를 해보면 내장 사이사이에 낀 지방이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살짝 나온 이른바 올챙이형 체형이라면 이미 대사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작은 췌장과 적은 근육량의 치명적 조합
서구인에 비해 한국인은 췌장(Insulin을 분비하는 내부 장기)의 절대적인 부피가 작으며 이는 인슐린 분비 용량이 태생적으로 부족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근육량이 적고 내장 지방 비율이 높은 신체 구조가 결합되면 혈당을 소모할 저장고가 부족해져 당뇨병 발생 위험이 극대화됩니다.
일산차병원 내분비내과 홍재원 교수는 마른 당뇨가 특이한 질환이라기보다 아시아인에게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태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근육은 우리가 섭취한 포도당의 약 70~80%를 소모하는 거대한 댐 역할을 하는데 마른 체형일수록 이 댐의 용량이 작아 혈당 파동(Glucose Spike)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만형 당뇨
주로 인슐린 저항성이 높음
심혈관 질환 위험 즉각 노출
마른 당뇨
인슐린 분비 능력 자체가 저하
미세혈관 합병증 위험성 증대
더욱 우려되는 점은 식습관입니다. 밥 위주의 탄수화물 식단과 가공식품 섭취가 늘면서 신체 내부의 대사 과부하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가천대길병원 내분비내과 김광원 교수는 정제된 탄수화물을 즐기는 한국인의 특성이 췌장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높여 마른 당뇨를 부추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체중 감량이 아닌 체성분 개선이 핵심
마른 당뇨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근육량을 늘리고 내장 지방을 줄이는 체성분 재구성(Body Recomposition)입니다. 무리한 단식이나 소식은 오히려 근육 감소를 초래하여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키고 혈당 조절을 방해하는 악순환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분명히 짚고 가겠습니다. 살이 안 찐다고 해서 마음껏 단 음식을 먹어도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마른 당뇨 환자일수록 혈당 완충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제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양질의 단백질 섭취를 늘려야 합니다. 콩, 두부, 닭가슴살과 같은 단백질 식품은 근육 세포를 유지하는 동시에 인슐린 민감도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진짜 목표는 혈당을 소모할 근육 엔진을 키우는 것입니다."
마른 당뇨 탈출을 위한 필수 실천 수칙
정제 탄수화물 절제: 흰 쌀밥, 밀가루 음식을 줄이고 현미나 귀리 같은 통곡물로 대체하여 혈당 급상승을 막아야 합니다.
저항성 운동 병행: 가벼운 걷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스쿼트나 푸시업 같은 근력 운동을 주 3회 이상 병행하여 근육량을 확보하십시오.
스트레스 및 수면 관리: 코르티솔 호르몬은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합니다. 하루 7시간 이상의 충분한 숙면이 대사 건강의 기초가 됩니다.
운동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마른 사람에게 운동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근육이 빠지면 당뇨 수치가 급격히 나빠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근감소증(Sarcopenia)이 동반된 마른 당뇨 환자는 사망 위험이 비만형 환자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요약 및 마무리
체형이 건강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마른 당뇨는 한국인에게 매우 흔하며, 조기 발견이 늦어 합병증 위험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체중 유지보다는 근육 강화와 식단 질 개선에 집중하는 것이 혈당 관리의 핵심입니다. 정기적인 혈액 검사를 통해 자신의 정확한 대사 상태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십시오.